아래글은 3/18일 조선일보 최보식 칼럼을 옮겨온 것입니다.
나 자신을 보는것 같아서.....
"딩동" 벨이 울렸다. 순번대기표를 뽑아 기다리던 이들 중 한명이 창구 앞에 섰다. 마치 은행 고객처럼.
비좁고 어둠침침한 공간에 뱀꼬리 줄이 이어져야 하는데, 실업급여를 타는 고용지원센터는 쾌적한
빌딩 안에 있었다. 그날 150여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홈런을 연거푸 날리던 WBC 대회 쿠바전(戰)이
벌어졌지만 아무도 그걸 화제로 삼지는 않았다.
20대와 여성들이 절반이 넘었다. 계약직과 임시직이 많고 '정보'에 밝기 때문이라고 창구직원이 설명했다.
내 나이 또래 중년 사내들은 멍하게 앉았거나 뒷줄에서 서성거렸다. 재킷에 넥타이 차림도 보였다.
'실직자'라서 외양이 다를 게 없다. 다가가서 말을 거니 체면과 자존심, 항변이 섞여있었다.
"지금까지 일했으면 됐지, 뭐 내가 놀려고 해서 놉니까. 마누라 보면 싸움질이나 하니 낮에는 아예
집에 안 붙어 있어요. 속에서는 천불이 납니다. 자식 새끼 공부는 시켜야 하는데 아비 구실을 못해요."
현재 실업급여를 타는 이들은 40만명이다. 딱 한달 사이에 수령자가 5만5000명 더 늘어났다.
이 중 40대가 실업급여 신청자 증가율에서 가장 높은 것으로 나왔다. 소위 처자식을 '먹여 살린다는'
가장(家長)들이다.
이런 실업급여의 줄은 점점 더 길어질 것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나눠야 할 때"라고 했지만, 적지 않은
기업들이 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소리 소문 없이' 명예퇴직을 받거나 밀어내고 있는 중이다.
전체 직원 4500명 중 800명을 자르겠다고 통보한 업체도 있다.
-중략-
실직은 단순히 일할 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다.
대부분 실직할 경우 매달 들어오는 봉급을 잃기 전에 '마음'을 먼저 잃고 주저앉는다.
그 당당했던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온몸에서 기(氣)가 다 빠져 축 늘어진 모습들을 우리 주위에서
종종 봤지 않은가.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자리가 높았던 자나 낮았던 자나 실직하면 대략 엇비슷해진다.
무엇보다 가장(家長)의 실직에는 적어도 일인분 이상의 한숨과 비탄, 사회적 불만이 있다.
실업급여의 줄에 선 중년 사내의 뒤로 처자식들이 줄줄이 뒤따르고 있는 것이다. 가정이 곳곳에서
붕괴되는 사회가 과연 건강하게 지탱할 수 있을까. 그 안에서 기업 활동만 정상적일 수 있을까.
구조조정은 물리적 거리(距離)로 보면 기업 안의 사람들을 그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잘려 나온 이들은 거리를 메운다. 이때부터 기업의 부담을 어쩌면 사회가 대신 떠안고 끙끙 앓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빠듯한 살림에서 더 많은 세금을 거둬 실직 가장들에게 실업급여를 줘야 한다는 뜻도 된다.
무한정 줄 수도 없을 것이다. 이미 내년 예산까지 앞당겨 써 빚더미에 오른 정부가 국제적으로
'빚 파산 잔치'를 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어쩌면 '길고 깊은' 불황이 올 하반기까지 풀리지 않으면, 기업은 살길을 찾아 더욱 구조조정에 매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수레바퀴가 굴러간 자리 뒤에 무엇이 우두둑 떨어져 있는지를, 가장의 실직이라는 것이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지도 한번쯤 눈길을 줄 때도 됐다. 어떤 선택과 결정을 '너무 쉽게' 내리기 전에 말이다.
현재 국내에는 공식적으로 85만명의 실업자가 있다.
구직단념자, 파트타임 취업자 등을 포함하면 400만명으로, 체감실업률은 17%에 육박했다.
그런데 통계와 수치만으론 이 삶들의 고통(苦痛)이 잘 포착되지 않는다.
실업급여를 타는 줄에라도 서보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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