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문득...

급할수록 순리대로...법정스님 설법

홀로걷는 소풍길 2009. 2. 11. 00:06

 

산그늘이 내릴 무렵, 하루 일을 마치고 개울물에 씻고 나서, 흐르는 개울물
소리에 귀를 맡기고 한참을 쉬었다.
개울가에 앉아 무심히 귀 기울이고 있으면,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인식하게 된다.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것은, 세월도 그렇고 인심도 그렇고 세상만사가 다
흘러가며 변한다.


인간사도 전생애의 과정에서 보면 기쁨과 노여움, 슬픔과 즐거움이 지나가는
한때의 감정이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의 어려움도 지나가는 한때의 현상이라고 나는
믿는다.
이 세상에서 고정 불변한 채 영원히 지속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세상일이란 내 자신이 지금 당장에 겪고 있을 때는 견디기 어렵도록 고통스런
일도, 지내놓고 보면 그때 그곳에 그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다.
이 세상일은 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그 누구도 아닌 우리들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우리가 빠지게 된 것이다.


이 시대와 이 지역에서 함께 살아간다는 이 엄연한 현실이 공동 운명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고 탓할 것도 없다.

이 땅에 몸담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저마다 몫몫이 그 책임이 있다.


오늘 우리가 겪는 온갖 고통과 이 고통을 이겨내기 위한 의지적인 노력은,
다른 한편 이 다음에 거둘 새로운 열매가 될 것이다.
따라서 이 어려움을 어떤 방법으로 극복하느냐에 의해서 미래의 우리 모습은
결정된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공사가 진행중인 위태로운 길목에는 ‘절대감속’이라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절대’란 모든 언어가 그 앞에서 주눅이 드는 초월의 세계다.
위험한 길이니 감속하라는 경고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적인 위기에도 이런 경고가 해당될 것 같다.
급하다고 서둘지 말고 순리대로 풀어나가라는 것이다.


물의 흐름이 때로는 급한 여울과 폭포도 이루지만, 그 종점인 바다에
이르기까지는 자연스런 흐름을 이룬다.

어려운 때일수록 급히 서둘지 말아야 한다.
지난 세월 그 많은 시행착오가 급히 서두른 결과였음을 상기해야 한다.


개인적인 처지에서 보면 오늘의 어려움은 저마다 처음 당하는 일 같지만,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은 일찍이 누군가 갔던 길이다.

 

이런 시가 있다.


아무리 어둡고 험난한 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지나갔을 것이고,
아무리 가파른 고갯길이라도
나 이전에
누군가는 이 길을 통과했을 것이다.
아무도 걸어본 적이 없는
그런 길은 없다.
어둡고 험난한 이 세월이
비슷한 여행을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도움과 위로를 줄 수 있기를. (베드로시안의 ‘그런 길은 없다’)